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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철학자 시리즈 2 : 비코(Giambattista Vico, 1668~1744)

by ethics-lab-1 2026. 4. 1.

내가 비주류 철학자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사실 따로 있다. 요즘 'TOSS'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B주류 초대석'을 재밌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B급, 비주류로 칭하는 세 호스트들은 채널의 인기에 힘입어 최근 화보까지 찍었다. 비주류가 화보를 찍는다. 이 역설이 증명하는 것은 하나다. 마이너함은 열등함이 아니라는 것.

 

비주류는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소외와 가난과 슬픔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마이너의 매력은 그 매력을 알아보는 자들의 심장에 직진하여 무언가를 꿰뚫어낸다. 철학의 역사에도 같은 법칙이 작동한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인물은 그 법칙의 가장 극단적인 증거다. 그는 자신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반지를 팔아야만 했지만, 그 책은 유럽 지성계에서 완전히 무시되었으며, 죽을 때까지 단 한 번의 반향도 듣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0년 후에도 읽힌다.

 


비코(Giambattista Vico, 1668~1744): 패배한 자의 사상이 오래 산다

1725년, 나폴리의 한 철학자가 자신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반지를 팔았다.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 1668~1744). 나폴리 대학교 수사학 교수로 평생을 보낸 이 인물의 연봉은 100두카트였다. 당시 나폴리의 숙련 장인 연봉이 약 80두카트였으니, 비코는 겨우 그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살았다. 그렇게 출판된 《새로운 학문(Scienza Nuova)》은 유럽 지성계에서 완전히 무시되었다. 파리도 런던도 베를린도 이 책을 몰랐다. 비코는 1744년 죽을 때까지 나폴리라는 지적 변방에 묶인 채, 자신의 사상이 어떤 반향도 만들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비주류 철학자 시리즈 2 : 비코(Giambattista Vico, 1668~1744)
출처 위키백과

 

그런데 이 패배한 사상가가 지금 왜 읽히는가. 이 물음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단순히 "시대를 앞섰다"는 설명은 너무 편리하다. 더 정확한 물음은 이것이다. 비코의 사상이 당대에 무시된 이유와, 이후 반복적으로 재발견된 이유는 동일한 원인에서 오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추적하는 것이 비코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경로다. 계몽주의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인문학이 어떻게 앎을 주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상이 어떻게 시대와 교섭하는지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이 글이 필요하다.

1. 데카르트의 승리, 그리고 지워진 것들

1637년 《방법서설》이 유럽 지성의 지형도를 바꾸었다. 수학적 명증성을 모든 지식의 표준으로 세운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측정되고 계산될 수 없는 것을 "불확실한 것"의 범주로 밀어냈다. 역사, 신화, 언어, 시가 지워졌다.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온 모든 비수학적 언어들이 학문의 변방으로 추방되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지금도 작동하는 무언가를 본다. 내가 공부하면서 항상 암묵적으로 자연과학의 확실성을 부러워했던 것, 측정되고 검증된다는 것의 위엄. 데카르트가 만든 위계는 3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무엇을 "진짜 지식"으로 여기는지를 규정하고 있다. 비코의 분노는 정확히 이 위계의 근거를 묻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속한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어떤 역사를 담고 있는지. 이 물음들은 수학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물음들은 학문이 될 수 없는가.

2. verum factum — 나는 이 명제를 복수(復讐)로 읽는다

비코의 응답이 verum factum 원리다. 1710년 《이탈리아인들의 고대 지혜》에서 처음 체계화된 이 명제는 간결하다.

"라틴어에서 진리(verum)와 사실(factum)은 상호 전환된다(Latinis verum et factum reciprocantur). 진리는 만들어진 것과 같다."

나는 이 문장을 인식론적 등식이 아니라 데카르트에 대한 철학적 복수(revenge!!)로 읽는다. 논리의 구조를 따라가면 그 이유가 드러난다. 수학은 왜 확실한가. 비코의 답은 충격적이다. 수학이 확실한 이유는 자연을 정확히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수학을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든 자만이 완전히 안다. 역으로, 자연은 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신만이 완전히 알고, 인간의 자연과학은 원리상 수학적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다. 뉴턴 역학의 전성기에 나온 이 주장이 무시된 이유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verum factum의 진짜 파급력은 세 번째 함의에 있다. 인간이 만든 역사와 문명과 언어는, 바로 그 이유에서 완전히 알 수 있는 영역이다.

"인간의 세계는 확실히 인간이 만든 것이다. 따라서 그 원리들은 우리 자신의 인간 정신의 변양(modification) 안에서 찾아야 한다."

《새로운 학문》 1744년판의 이 문장은 데카르트의 위계를 정확히 역전시킨다. 인문학은 자연과학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가장 근원적인 앎에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인간이 만든 것을 인간이 안다. 만든 자가 만든 것을 아는 것이 verum factum의 원리라면.

3. 판타시아와 언어 — 인식의 또 다른 형식

비코의 두 번째 핵심 개념은 판타시아(fantasia), 즉 상상력이다. 계몽주의에서 상상력은 이성에 비해 열등한 능력이었다. 감각적이고 주관적이며 오류에 취약한 것. 비코는 이 위계를 뒤집는다. 인류의 초기, 신들의 시대에 인간은 이성이 아닌 판타시아로 세계를 인식했다. 천둥을 신의 분노로 해석하는 것, 자연 현상을 의인화하는 것은 인식의 실패가 아니라 인식의 다른 형식이다.

 

이 논점에서 나는 현대 인지과학이 비코를 만나는 지점을 본다. 레이코프와 존슨의 《삶으로서의 은유》(1980)는 인간의 개념 체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은유적 구조를 가진다는 것을 실증했다. 비코가 1725년에 판타시아를 인식의 원초적 형식으로 옹호했을 때, 그는 250년 후 인지과학이 확인할 통찰을 직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어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작동한다. 비코는 언어를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역사 자체로 읽었다. 단어의 어원을 추적하면 그것을 만든 공동체의 사유 방식이 드러난다. 언어는 역사의 화석이다. 이 통찰은 20세기 가다머의 "존재는 이해될 수 있는 것인 한에서 언어이다"라는 명제와 본질적으로 같은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4. 200년의 침묵, 그리고 귀환의 조건

비코가 처음 재발견된 것은 1827년이었다. 프랑스 역사가 미슐레(Jules Michelet)가 《새로운 학문》을 번역하면서 비코를 "역사철학의 아버지"로 소개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크로체(Benedetto Croce)가 1911년 비코를 표현 철학의 선구자로 복원했고, 영국에서는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1976년 《비코와 헤르더》에서 비코를 계몽주의적 보편주의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반론자로 위치시켰다.

"비코는 인간의 본성이 고정되어 있으며 모든 시대에 동일하다는 가정을 거부한 최초의 사상가들 중 하나였다(Vico was among the first to insist that human nature is not identical in all times and places)."

나는 이 문장을 역사적 평가가 아니라 현재 시제로 읽는다. 각각의 재발견자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비코를 읽었다. 미슐레에게는 민중사의 비코, 크로체에게는 표현 철학의 비코, 벌린에게는 반보편주의의 비코. 그리고 이 패턴에서 하나의 법칙이 보인다. 비코는 지배적 패러다임이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가 전면화될 때마다 소환되었다. 사상의 귀환은 텍스트가 귀환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귀환할 때 사상이 귀환한다.

 

결론 — 패배가 사상을 어떻게 보존하는가

서두의 장면으로 돌아온다. 반지를 팔아 책을 찍은 사람이 그 책을 무시당하는 것을 보면서 죽었다. 그런데 그 책이 250년 후에도 읽힌다. 왜인가.

 

동시대에 승리한 사상은 제도화되면서 변형된다. 학파가 생기고, 교과서에 실리고, 정전의 언어가 되면서 원형이 희석된다. 그러나 비코는 어떤 학파에도 흡수되지 않은 채 보존되었다. 무시되었기 때문에. 재발견자들이 만난 것은 150~200년 전 원형 그대로의 텍스트였다. 패배가 사상을 순수하게 보존했다.

 

비코를 읽는 가장 정직한 방법은, 자신이 어떤 문제 때문에 비코로 가는지를 먼저 아는 것이다. 인식론의 문제라면 《이탈리아인들의 고대 지혜》를, 역사철학의 문제라면 《새로운 학문》 1744년판의 「원리들」 섹션을, 계몽주의 비판의 문제라면 벌린의 《비코와 헤르더》를 함께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어떤 경로로 들어가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먼저 읽고 비코로 넘어오는 것이 가장 빠르다. 두 텍스트는 서로를 가장 선명하게 조명하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