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사를 좋아하고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에 상당한 흥미를 느낀다. 특히 조선 후기의 학자들에게 관심이 크다. 왜냐하면 사상사적으로 그들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견고하던 관료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장시(場市)에서는 돈이 돌았으며, 바다 건너에서 온 낯선 책들이 조선의 서재에 슬그머니 들어오던 시대....! 조선 땅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의 진정한 진리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민하고 영특한 학자일수록 더 그랬을 것.
그 중 한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9): 방 안에서 세계를 읽은 사람

서두: 새벽, 명남루에 불이 켜진다
새벽 한양. 명남루(明南樓)라는 이름의 서재에 불이 켜진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9)는 이 시간을 가장 좋아했을 것이다. 도시가 깨어나기 전, 책과 단둘이 있는 시간. 그의 책상 위에는 어제 읽다 만 책이 펼쳐져 있었다. 중국을 통해 번역된 서양 천문학 서적이었을 수도 있고, 인체 해부도가 담긴 의학서였을 수도 있다. 창밖으로는 아직 어두운 한양의 골목이 보였다. 그 골목 너머 어딘가에서 서양 함선이 조선의 해안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최한기는 그 소리보다 책장 넘기는 소리에 더 집중했다.
그는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진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이 방 안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조선 후기 격변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자발적으로 방 안에 머물렀다. 왜인가. 이 글은 그 새벽 불빛에서 시작해, 그가 읽은 책들을 따라가고, 그 책들이 그의 방을 어떻게 세계로 확장시켰는지를 추적한다.
1부: 책들이 도착하던 날들 — 사상의 연대기
최한기의 서재에 책이 쌓이기 시작한 것은 20대부터였다. 그의 양부 집안은 넉넉했고, 그 덕에 당시 조선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살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전통적인 유학 서적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중국에서 번역된 서양 서적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836년, 그의 나이 34세. 《기측체의(氣測體義)》를 완성했다. 이 책은 두 가지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기(神氣), 즉 인간의 감각과 인식 능력. 그리고 추측(推測), 즉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의 법칙을 알아가는 과정. 지금의 언어로 바꾸면 관찰과 추론이다. 이 책을 쓸 때 그의 서재에는 이미 서양 과학서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 책들이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세계는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관측 가능한 것이라고.
그로부터 21년 후인 1857년, 54세의 최한기는 평생의 사유를 집대성한 《기학(氣學)》을 완성했다. 이 책에서 기(氣)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기는 우주 만물을 관통하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 활동운화(活動運化). 그리고 인간은 그 운동의 법칙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서양 과학이 말하는 자연의 운동 법칙이 바로 이 기의 활동운화라는 것이었다.
"표준을 세워 허실을 가리고, 경험을 통해 제반의 것들을 처리한다(立標準 辨虛實 經驗 處諸事)."
나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최한기가 21세기 사람처럼 느껴졌다. 기준을 세우고, 검증하고, 경험으로 처리한다. 이것은 성리학의 언어가 아니었다. 책들이 도착하던 그 날들이 이 문장을 만들었다.
2부: 서재에서 세계로 — 공간이 확장되는 방식
명남루의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최한기의 시선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상상해본다.
처음에는 책이었다. 책 안에 한양이 있었고, 조선이 있었고, 중국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유럽이 있었다. 지구가 있었다. 그는 김정호와 함께 《만국경위지구도(萬國經緯地球圖)》를 만들었다. 지구 전체를 한 장의 지도 위에 올려놓는 작업이었다. 직접 가보지 않은 대륙들을 그는 책으로 먼저 알았고, 그것을 지도 위에 좌표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최한기의 공간 감각은 조선의 어떤 사상가와도 달라졌다. 서양 과학을 접한 조선 지식인 대부분은 두 가지 반응 중 하나를 보였다. 완전히 거부하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최한기는 제3의 길이었다. 서양 과학의 성과를 기학이라는 자신의 언어 안으로 번역하는 것. 그 번역 작업이 그의 서재에서 일어났다.
흥선대원군이 쇄국령을 선언하고,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던 그 시대에, 최한기는 서양 인체 해부학서를 읽으며 《신기천험(身機踐驗)》을 쓰고 있었다. 그의 서재가 조선에서 가장 열린 공간이었다. 물리적으로는 가장 좁은 공간이었지만.
3부: 다시 방 안으로 — 가장 좁은 공간의 역설
그러나 최한기의 서재가 세계를 향해 열려 있었다고 해서, 그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의 책은 팔리지 않았다.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제자도 없었다. 동시대 지식인들은 그를 몰랐거나 무시했다. 개화기 지식인들은 최한기가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그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었지만, 정작 그 세계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다.
노년의 최한기는 자신의 책을 저당 잡혀 생계를 유지했다. 평생 책을 사 모으고 글을 썼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그 책들을 담보로 밥을 먹었다. 이 시리즈에서 비코가 반지를 팔아 책을 찍었다면, 최한기는 책을 팔아 끼니를 해결했다. 비주류 철학자들의 말년이 이렇게 닮아 있다는 것이, 쓸쓸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결론: 저녁, 명남루에 불이 꺼진다
하루가 끝난다. 최한기가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본다. 한양의 골목은 다시 어두워지고 있다. 그 어둠 속에서 조선은 변하고 있었고, 그 변화는 결국 그가 평생 읽고 쓴 것들과 교섭하지 못한 채 지나갔다.
최한기를 읽는 가장 좋은 첫 번째 문장은 그가 남긴 것이다.
"학문이 생활에 있으면 실(實)의 학문이 되고, 생활에 있지 않으면 허(虛)의 학문이 된다."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지금 자신이 하는 공부, 읽는 책, 쓰는 글을 한 번 돌아보기를 권한다. 실의 학문인가, 허의 학문인가. 최한기는 방 안에서 그 질문을 평생 붙들었다. 그리고 그 질문이 그의 서재를 세계로 만들었다.
명남루의 불이 꺼진다. 책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