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기(崔漢綺, 1803~1879): 세 번 읽어야 보이는 사람
서론: 나는 최한기를 세 번 오독했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9)를 처음 접하는 독자는 대개 비슷한 경로를 밟는다. 조선 후기 실학자, 동서양 사상을 융합한 선구자, 근대적 경험주의의 선구자. 이 세 가지 수식어가 그에게 가장 자주 붙는 것들이다. 나는 이 순서대로 최한기를 읽었고, 순서대로 틀렸다. 첫 번째 독해는 그를 정약용의 아류로 만들었고, 두 번째 독해는 그를 동양의 베이컨으로 만들었으며, 세 번째 독해에서야 비로소 그 두 규정 모두 최한기의 사유가 가진 가장 독특한 층위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글은 그 세 번의 오독과 수정의 기록이다. 조선 성리학의 내적 논리와 19세기 서양 경험주의의 구조적 차이에 관심 있는 독자, 그리고 동서양 철학의 진정한 교섭이 어떤 모습인지를 묻는 독자에게 이 글이 필요하다.

1부: 첫 번째 오독 — 실학자로 읽다, 그리고 틀리다
처음에 나는 최한기를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같은 계열로 읽었다. 실학(實學)의 흐름 안에서,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관념론을 비판하고 실용적 지식을 추구한 사상가. 이 독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맞는 부분부터. 최한기는 분명히 성리학의 이(理) 중심 세계관을 비판했다. 성리학의 핵심 명제인 이기론(理氣論)에서 이(理)는 기(氣)보다 존재론적으로 우선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원리가 현상 세계의 기초라는 것이다. 최한기는 이 위계를 뒤집었다. 기(氣)만이 실재하며, 이(理)는 기의 운동 안에 내재한 법칙일 뿐이라는 것.
그러나 이것을 실학의 연장으로 읽는 순간 오류가 시작된다. 정약용의 실학이 제도 개혁과 민생 문제에 집중했다면, 최한기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우주론과 인식론을 동시에 재구성하려 했다. 《기측체의(氣測體義)》(1836)에서 그가 정립한 두 개념, 신기(神氣)와 추측(推測)은 정치경제학적 개혁 언어가 아니었다.
"신기는 형질 안에 있으면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각을 느끼는 것이다. 추측은 신기가 사물에 접하여 그 이치를 헤아리는 것이다(神氣在形質中 能視聽嗅嘗觸 推測是神氣接物 而度其理也)."
나는 이 문장을 처음 읽을 때 주자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물에 접하여 이치를 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주자학의 격물은 이미 존재하는 이(理)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최한기의 추측은 기(氣)의 운동으로부터 법칙을 귀납하는 과정이다. 전자는 계시의 구조이고, 후자는 탐구의 구조다.
2부: 두 번째 오독 — 동양의 경험주의자로 읽다, 그리고 절반만 맞다
첫 번째 오독을 수정하면서 나는 최한기를 19세기 서양 경험주의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과 거의 정확히 겹친다. 밀의 《논리학 체계(A System of Logic)》가 출판된 것은 1843년이었고, 최한기의 《기학(氣學)》이 완성된 것은 1857년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몰랐지만, 같은 시대에 비슷한 문제를 붙들고 있었다.
밀의 귀납 논리학과 최한기의 추측론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둘 다 감각 경험을 지식의 출발점으로 삼고, 개별 경험의 축적으로부터 일반 법칙을 도출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밀이 귀납의 다섯 가지 방법을 체계화했다면, 최한기는 경험 추측의 단계를 기학의 언어로 정식화했다.
그러나 이 비교도 결국 절반에서 멈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밀의 경험주의는 형이상학적 실재를 괄호 치고 현상 세계의 법칙만을 탐구한다. 그러나 최한기의 기학은 형이상학적 실재를 포기하지 않는다. 기(氣) 자체가 이미 우주론적 실재이기 때문이다. DBpia에 수록된 철학 논문 〈최한기를 읽기 위한 제언〉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짚는다.
"그가 강조한 '경험'이라는 관념 안에는 경험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실재에 대한 이념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두 번째 오독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았다. 최한기를 서양 경험주의의 동양판으로 읽는 것은, 그의 사유에서 가장 독특한 층위, 즉 경험과 형이상학이 분리되지 않는 구조를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3부: 세 번째 독해 — 기학은 보편학의 기획이었다
두 번의 오독을 거친 후에야 나는 최한기가 진짜 무엇을 하려 했는지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실학자도 아니었고 동양의 경험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보편학(普遍學)을 기획하고 있었다.
《기학》에서 최한기는 이렇게 쓴다.
"천지만물이 모두 기로 이루어져 있고, 기의 운화(運化)는 고금을 관통하며, 동서를 막론하고 동일하다(天地萬物 皆是氣也 氣之運化 通貫古今 不分東西)."
이 문장의 함의를 천천히 따라가보자. 기가 동서를 막론하고 동일하다면, 서양 과학이 발견한 자연 법칙과 동양 철학이 탐구한 우주 법칙은 동일한 실재를 다른 언어로 기술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동서 융합론이 아니다. 기학이라는 하나의 언어 체계가 모든 문명의 지식을 포섭할 수 있다는, 훨씬 더 야심찬 주장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가 실증주의(positivism)를 통해 모든 학문을 하나의 과학적 방법론 아래 통합하려 했을 때, 최한기는 기학을 통해 동서양의 모든 지식을 하나의 우주론적 언어 아래 통합하려 하고 있었다. 둘 다 보편학의 기획이었다. 그러나 콩트가 형이상학을 버리고 현상만을 남겼다면, 최한기는 형이상학과 현상을 기(氣)라는 단일 개념 안에서 통합했다. 이것이 최한기가 단순한 경험주의자가 아닌 이유다.
결론: 오독이 독해를 만든다
최한기는 세 번 읽어야 보이는 사람이다. 첫 번째 독해에서 그는 실학자로 보인다. 두 번째 독해에서 경험주의자로 보인다. 세 번째 독해에서야 비로소 보편학을 기획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세 번의 독해가 모두 필요하다. 처음 두 독해가 틀렸다고 해서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오독이 다음 독해의 진입점을 만들기 때문이다.
최한기를 읽는 가장 정직한 순서를 권한다면 이렇다. 《기측체의》의 추측론을 먼저 읽고, 존 스튜어트 밀의 귀납 논리와 비교한다. 그 다음 《기학》의 활동운화 개념으로 넘어가, 왜 최한기의 경험론이 밀의 경험론과 다른지를 묻는다. 그 물음이 해결될 즈음, 최한기가 기획한 것이 실학도 경험주의도 아닌 보편학이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도 최한기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네 번째 오독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최한기를 계속 읽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