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시몬 베유의 텍스트를 읽으면서 기록한 독서 일지에 가깝다. 베유의 문장들은 원전을 바탕으로 한 번역이며, 인용 출처를 각 단락에 밝혔다.
첫날.
베유를 처음 펼친 것은 아무 준비 없이였다. 시리즈의 마지막 인물로 그를 선택했을 때, 나는 그저 "좌파이면서 신비주의자, 유대인이면서 가톨릭에 매료된 철학자"라는 소개 문장만 알고 있었다. 그 소개 문장이 이미 이상했다. 좌파이면서 신비주의자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유대인이면서 가톨릭에 매료된다는 것은 어떤 내면의 지형인가.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는 파리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오빠 앙드레 베유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시몬은 오빠의 천재성을 어릴 때부터 옆에서 보며 자랐고,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14세에 이미 철학적 문제를 붙들고 있었고, 명문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 입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같은 학교에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있었다. 그 찬란한 계보에서 지금 베유는 가장 덜 읽히는 이름이다.
그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노동운동가였고, 교사이면서 농장 일꾼이었으며, 신비주의자이면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사람이었다. 1934년 25세의 철학자 베유는 직접 르노 자동차 공장에 들어갔다. 노동자들의 고통을 이론이 아닌 몸으로 알기 위해서. 10개월 동안 조립 라인에서 일했다. 손은 굳었고 몸은 망가졌다. 그 경험을 기록한 《공장 일기(Journal d'usine)》는 철학 텍스트라기보다 상처의 기록처럼 읽힌다.
34세에 죽었다. 폐결핵이었다. 그러나 사인을 두고 다른 말도 있다. 나치 점령 치하 프랑스에서 저항군에 합류하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간 그는, 점령지 프랑스의 노동자들과 같은 양의 식사만 하겠다며 스스로 식사를 제한했다. 영국 법원은 사망 원인을 "스스로를 굶겨 죽인 것"이라고 기록했다. 대부분의 저작은 사후에 출판되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몸으로 살다가, 몸으로 죽었다.
이 사실들을 머릿속에 넣고 《중력과 은총(La Pesanteur et la Grâce)》의 첫 장을 열었다.
"모든 자연적인 것들은 중력의 법칙에 따른다. 은총만이 예외다(Tout ce qui est naturel est soumis à la nécessité. La grâce seule fait exception)."
나는 이 문장에서 처음 멈췄다. 철학책의 첫 문장치고는 너무 짧고 너무 단정했다. 신학처럼 읽혔다. 그러나 공장에서 10개월을 보내고, 전쟁터로 갔고, 굶으면서 죽은 사람이 쓴 문장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다르게 읽힌다. 중력은 모든 것을 아래로 끌어당긴다. 그 당김에 저항하는 것이 은총이다. 베유는 평생 그 저항을 몸으로 실천했다.
둘째날. 주의(attention)라는 개념 앞에서.
베유의 핵심 개념은 "주의(attention, 注意)"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집중"과 다르다. 《학교 공부와 신에 대한 사랑(Réflexions sur le bon usage des études scolaires)》에서 베유는 이렇게 쓴다.
"주의는 의지의 긴장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비움이자 기다림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비어져 나오는 것(L'attention est un effort, le plus grand de tous peut-être, mais c'est un effort négatif)."
나는 두 번째로 멈췄다. 집중이 비움이라는 것. 나는 이것을 처음에 선불교적 무아(無我)의 언어로 읽었다. 그런데 베유는 가톨릭 신비주의자였다. 그렇다면 이 비움은 무엇을 향한 비움인가.
베유에게 진정한 주의는 타자의 고통에 완전히 열리는 능력이었다. 자기 자신의 판단, 선입견, 욕망을 내려놓고 고통받는 타자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는 이것을 추상적 명제로 쓰지 않았다. 1934년, 25세의 철학자 베유는 직접 르노 자동차 공장에 들어갔다. 노동자들의 고통을 이론이 아닌 몸으로 알기 위해서. 10개월 동안 조립 라인에서 일했다. 그 경험을 기록한 《공장 일기(Journal d'usine)》는 철학 텍스트라기보다 상처의 기록처럼 읽힌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이 시리즈의 다른 인물들을 떠올렸다. 이지는 유학의 언어 안에서 유학을 해체했고, 비코는 서재에서 혼자 역사철학을 썼으며, 쇼에키는 직경(直耕)을 말하면서도 자신이 밭을 갈지 않는다는 모순을 인정했고, 최한기는 방 안에서 세계를 읽었다.
이들 모두 사유와 삶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각자의 방식으로 붙들었다. 베유는 그 간극을 없애는 방식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몸으로 들어가는 것.
셋째날. 사르트르와 베유가 같은 시대에 있었다는 것.
베유는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École Normale Supérieure)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같은 학교에 사르트르가 있었다. 보부아르도 있었다. 베유는 그 찬란한 계보에서 지금 가장 덜 읽히는 이름이다.
왜인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 위에서 자유와 선택의 철학을 구축했다면, 베유는 정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자기 자신을 지워나가는 것, 감소(decreation)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나는 신이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되어야 한다. 신이 나를 통해 창조를 바라볼 수 있도록, 내가 투명해져야 한다(Il faut que je disparaisse pour que Dieu aime à travers moi)."
나는 세 번째로 멈췄다. 그리고 가장 오래 멈췄다. 이 문장은 철학적 자살처럼 읽혔다. 자기 자신을 지운다는 것. 그러나 천천히 읽으면 다르게 열린다. 베유에게 자기 소멸은 패배가 아니라 가장 적극적인 윤리적 행위였다. 자신이 가득 차 있는 한, 타자의 고통은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자신을 비워야만 타자가 들어올 수 있다.
사르트르가 자유를 말할 때 그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자유였다. 베유가 주의를 말할 때 그것은 언제나 타자를 향한 것이었다. 이 차이가 두 사람의 계보가 갈리는 지점이다. 베유가 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자기 자신을 지우라는 말은, 자아를 확장하고 싶은 욕망에 정면으로 역행하기 때문에.
넷째날. 독서를 마치며
베유를 다 읽고 나서 나는 한동안 책을 덮지 못했다.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지금 내가 하는 이 글쓰기 행위 자체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나는 이 시리즈를 쓰면서 다섯 명의 비주류 철학자들을 소개했다. 이지, 비코, 쇼에키, 최한기, 그리고 베유. 이들을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 나는 그들의 사유를 내 언어로 정리하고, 내 각도로 해석하고, 내 결론으로 닫았다. 이것은 일종의 전유(appropriation)다. 베유라면 이것을 어떻게 볼까. 타자의 사유를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는 행위가 진정한 주의인가, 아니면 주의의 실패인가.
나는 이 물음에 아직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물음을 갖게 된 것 자체가 베유를 읽은 결과다. 베유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더 정직한 물음을 갖게 만드는 사람이다.
베유를 읽는 진입점으로는 《중력과 은총》의 첫 30페이지와, 《신을 기다리며(Attente de Dieu)》의 〈학교 공부와 신에 대한 사랑〉을 함께 권한다. 전자는 베유의 사유 전체를 압축하고, 후자는 주의 개념이 가장 구체적으로 전개된 텍스트다. 그리고 두 텍스트를 읽기 전에, 그가 25세에 공장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두기를 바란다. 그 사실이 모든 문장의 무게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