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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해서 못 읽는 『피로사회』: 한병철이 말하는 우리가 지친 진짜 이유"

by ethics-lab-1 2026. 4. 6.

책장에 한병철의 『피로사회』가 꽂혀 있다. 사실 얇은 책이고 제목이 주는 강렬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는 걸' 보고 나도 금방 읽겠거니 했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내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샀다'고 했지 '읽었다'고는 안 했다. 책은 난해한 개념들로 가득한 아주 높은 수준의 철학 논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2페이지 정도를 읽고 피로해져서 금방 내려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피로한 삶에 대한 통찰을 얻고 싶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 책을 사들이고 있는 것 같다. 이 굉장한 아이러니. 피로해서 볼 수 없는 『피로사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피로한가. 한병철은 그 답이 게으름이나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가 자발적으로 올라탄 시스템 안에 있다고 말한다.

피로해서 못 읽는 『피로사회』: 한병철이 말하는 우리가 지친 진짜 이유"
출처 PEXELS

 

1.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피로의 기원이 바뀌었다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대 사회를 Michel Foucault가 분석한 규율사회(Disziplinargesellschaft)와 대비시킨다. 푸코의 규율사회는 "하면 안 된다"의 사회다. 감옥, 병원, 학교, 공장이라는 공간에서 외부의 권력이 개인을 억압하고 통제한다. 복종하지 않으면 처벌이 따른다. 억압의 주체가 명확하다.

 

그런데 한병철은 21세기에 이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한다. 현대는 성과사회(Leistungsgesellschaft)다. "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의 사회. 억압의 주체가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했다. 아무도 나에게 야근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한다. 아무도 나에게 자기계발을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원한다. 한병철은 이것이 규율사회보다 훨씬 잔인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성과주체는 억압하는 타자 없이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1-1. 자유가 착취가 되는 순간

역설이 여기 있다. 우리는 자유로워졌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더 깊이 착취당하고 있다. 규율사회에서는 퇴근하면 끝이었다. 성과사회에서는 퇴근이 없다. 침대에 누워서도 내일 할 일을 생각하고, 휴가지에서도 메일을 확인한다. 착취가 24시간화됐다. 그리고 그것을 강요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 분노가 안으로 향한다. 번아웃이다.


2. 우리는 왜 스스로를 착취하는가: 긍정성의 과잉

한병철이 성과사회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제시하는 것이 긍정성의 과잉(Übermaß des Positiven)이다. 부정성, 즉 저항과 경계와 거절이 사라진 자리에 끝없는 긍정이 들어선 것이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하면 된다." 이 언어들이 현대인의 내면을 지배한다.

 

국내 직장인의 번아웃 경험률은 2023년 기준 약 67%에 달한다(대한직업환경의학회, 2023). 셋 중 둘이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수치가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오히려 높아졌다는 점이다. 통제가 줄었는데 번아웃이 늘었다. 한병철의 진단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지점이다. 외부의 강제가 줄어들수록 내부의 강제가 커진다.

2-1. 갓생이라는 자발적 착취

이것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갓생 트렌드다. 새벽 5시 기상, 운동, 독서, 부업.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설계하고 스스로 실행한다. 한병철이라면 이것을 성과사회의 가장 완성된 형태라고 볼 것이다. 착취가 너무 내면화되어 그것을 자아실현이라고 부르게 된 상태. 갓생을 살지 못하는 날의 죄책감이 바로 그 증거다. 감시자가 내 안에 있다.


3. 피로에도 두 종류가 있다: 소진의 피로 vs 회복의 피로

한병철이 가장 독창적으로 제시하는 지점이 여기다. 그는 모든 피로가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피로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소진의 피로(Erschöpfungsmüdigkeit)다. 성과사회가 만들어내는 피로.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자아가 고갈되는 상태다. 이 피로는 혼자이게 만들고, 타인과의 연결을 끊고, 세계를 적대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두 번째는 근본적 피로(fundamentale Müdigkeit)다. 한병철은 페터 한트케의 소설 『피로에 대한 시론』을 인용하며 이렇게 설명한다. "나를 소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게 해주는 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고요한 피로. 이 피로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타인과 함께 있을 수 있고, 세계와 화해할 수 있다.

3-1. 우리에게 필요한 피로

문제는 성과사회가 근본적 피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심어놓는다. 주말에 쉬면서도 "이러고 있어도 되나"를 반복한다. 한병철은 이 죄책감 자체가 성과사회의 내면화된 감시라고 진단한다. 진짜 회복은 생산적 휴식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다. 내일을 위한 충전도 아니다.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허락된 상태, 그 피로가 역설적으로 우리를 다시 세계와 연결시킨다.


결론

이 책을 정말 힘겹게 다 읽고 해설 강의까지 들은 뒤에야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혼자 읽었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개념들을 그나마 알아듣게 되었지만 아직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부끄럽진 않다. 한병철이라면 오히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니까. 완벽히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 자체가 이미 성과사회의 논리라고. 우리가 지친 것은 나약해서가 아니다. 착취가 너무 정교해져서, 그것이 착취인지 모르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안의 나약함을 인정하며, 나라는 사람이 느끼고 있는 근본적 피로를 기쁘게 수용하며, 이제 그만 쓰려고 한다. 피곤하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