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주 가까운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다. 단독으로 쓰는 아담한 규모의 웨딩홀 로비에는 햇살이 가득 쏟아져 내렸다. 홀을 가득 채운 하얀 꽃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가장 예쁜 모습을 한 두 사람. 진심 어린 축하를 담아 박수를 보냈다.
신랑 신부는 영원히 이 사랑을 지켜나가겠다는 로맨틱한 혼인 서약을 했다. 연애 기간을 꽤 거친 그들이 여전히 설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의 설렘이라는 건 언젠가 사라진다. 필연적으로. 두근거림과 떨림만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의 서약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그렇다면 먼 훗날,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질 때, 그때에 가서도 나는 당신을 최대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겠다는 내용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믿을만한 혼인 서약이 아닐까. 하지만 그건 결혼식에 어울리지 않지.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설렌다는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사라진 뒤에도 사랑은 가능한 것인지. 뇌과학과 철학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을 한다.

1. 설렘의 정체: 페닐에틸아민이라는 불편한 진실
사랑에 빠졌을 때의 두근거림, 상대방 생각에 잠 못 드는 밤, 손끝이 스칠 때의 전율. 이 모든 것의 정체는 페닐에틸아민(PEA, Phenylethylamine)이다.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를 촉진한다. 쉽게 말하면 뇌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행복 물질이다.
문제는 이 물질의 유통기한이다. 연구에 따르면 페닐에틸아민의 분비는 평균 18개월에서 36개월이면 현저히 줄어든다(Liebowitz, 1983). 3년이 채 되기 전에 설레는 감정의 화학적 근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맹세하는 영원한 사랑은,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유통기한이 정해진 호르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1-1. 그렇다면 사랑은 착각인가
이 지점에서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 설렘이 호르몬이라면 사랑도 결국 생물학적 반응에 불과한 것인가. 뇌과학은 여기서 멈춘다. 호르몬이 사라진 뒤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는 뇌과학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이다.
2. 알랭 바디우: 사랑은 선택이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사랑 예찬』(2009)에서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랑은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지만, 그 이후는 선택이다. 차이를 견디며 함께 세계를 구성해나가는 지속적인 결단."
바디우에게 사랑의 본질은 설레는 감정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설렘을 사랑의 시작점으로만 본다. 진짜 사랑은 그 감정이 사라진 뒤에도 상대와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것, 차이와 갈등과 권태를 통과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의지다.
2-1. 바디우가 경계한 것
바디우는 현대인이 사랑에서 위험을 제거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가까워지고, 실망하지 않을 만큼만 기대하고, 불편하면 떠나는 방식. 그는 이것을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소비라고 불렀다. 진짜 사랑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 버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택하는 것이다.
3. 버거움을 선택한다는 것
그렇다면 오늘 결혼식장에서 낭독된 혼인 서약을 다시 생각해본다.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은 어쩌면 틀린 약속일 수 있다. 페닐에틸아민은 사라질 것이고, 설렘은 권태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바디우의 관점에서 보면, 진짜 서약은 그다음에 있다.
"모든 것이 버거워질 때가 오더라도, 그마저도 최대한 너른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겠다." 이것은 감정의 서약이 아니라 의지의 서약이다. 페닐에틸아민이 사라진 뒤에도 유효한, 진짜 약속.
3-1. 사랑은 기술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1956)에서 사랑을 능동적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사랑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바디우와 프롬이 수십 년의 시간을 두고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사랑은 호르몬이 만드는 감정이 아니라 반복적인 선택과 실천으로 길러지는 능력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The Art of Loving'인 것인데 여기서 Art는 Skill과 Techne 사이의 어딘가의 느낌이다. 단순한 요령(Skill)을 넘어 살의 태도와 수련을 포함하는 기예(Techne)에 가까운 것. 사랑은 우연히 찾아오는 감정이나 ‘빠지는 것(Falling in love)’이 아니라 스스로 연마해야 하는 실천적 기술인 셈이다.
결론
결혼식이 끝나고 나오면서 고이 보관하고 있던 청첩장도 다시 한번 펴보았다. 청첩장에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는 문구가 보였다. 정말로 사랑하는 친구기에 결혼을 선택한 것에 후회 없기를 바란다. 사랑의 형태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를. 변한 모습의 상대마저도 포용하며 함께 살아가기로 다시금 '선택'하기를. 그렇게만 된다면 아쉬움도, 미움도 조금씩 덜어내며 앞으로 한 50년 알콩달콩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페닐에틸아민은 유통기한이 있지만 우리가 내린 선택에는 유통기한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