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통증의 원인을 파악해 제거하는 것. 이 깔끔한 회로가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으니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고 스트레스를 피하세요. 의사가 해주는 처방이 이것 뿐일 때.
어쩔 수 없는 부분임은 이해한다. 눈부신 발전을 해온 현대 의학도 아직 극복하지 못한 분야가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가끔 의학계와 제약업계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서 해결되지 않는 분야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생리통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절절하게 체감했다. 아, 우리 사회는 '생리통'이란 것에 관심이 없구나.
통증이 심해 진통제를 맞으며 겨우 버티고 있던 내게 초로의 남성 의사는 말했다. "임신 계획은 없으시죠? 원래 여성이 출산을 하고 나면 생리통이 급격하게 완화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때 나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친구도 없는, 21살의 대학생이었다. 아랫배를 쥐어짜는 강렬한 통증만큼이나 거센 분노를 느꼈다.

1. 여성의 고통은 오래 기다렸다
생리통은 오랫동안 의학의 변방에 있었다. 2019년 영국 BBC는 생리통이 심장마비만큼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그러나 이것이 공식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이다. 자궁내막증은 전 세계 여성의 약 10%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임에도 평균 진단까지 7년에서 10년이 걸린다(세계자궁내막증연구재단, 2023). 고통을 호소해도 진단을 받기까지 1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가. 의학 연구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배제됐기 때문이다. 1977년 미국 FDA는 가임기 여성을 임상시험에서 제외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태아 보호를 명분으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여성의 몸은 연구 대상에서 빠졌다. 이 지침은 1993년에야 폐지됐다. 16년 동안 여성의 몸은 의학적으로 덜 중요한 몸이었다.
1-1. 히스테리라는 이름의 역사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의 설명 불가한 고통은 히스테리(hysteria)로 불렸다. 어원은 자궁을 뜻하는 히스테라(hystera)다. 여성이 아프면 자궁 탓이었다. 19세기까지 히스테리는 공식 진단명이었다. 수액을 맞으며 버티고 있던 내게 초로의 남성 의사가 임신을 해법으로 제시하던 그날, 그 진료실 안에는 히스테리의 역사가 살아있었다.
2. 보부아르: 여성의 몸은 출산을 위해 존재하는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1949)에서 이렇게 썼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구성의 핵심에는 언제나 출산이 있었다.
보부아르의 관점에서 그 의사의 말을 다시 보면 이렇게 읽힌다. 당신의 몸은 아이를 낳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 목적을 수행하면 고통이 줄어들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학적 조언이 아니다.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정의하는 시선이다. 보부아르가 경고한 타자화(objectification)가 진료실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2-1. 고통의 주체를 빼앗기는 순간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라는 말도 같은 구조다. 고통의 원인을 몸 밖에서 찾지 못할 때, 의료는 고통의 책임을 환자에게 돌린다. 당신이 스트레스를 관리하지 못해서, 당신의 정신이 몸을 힘들게 해서. 이 순간 고통의 주체는 환자 자신이 된다. 아픈 것도 내 탓, 낫지 않는 것도 내 탓. 보부아르라면 이것을 또 다른 형태의 타자화라고 불렀을 것이다.
3. 내 고통은 내 것이다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1978)에서 질병에 도덕적 의미를 덧씌우는 문화를 비판했다. 암은 억압된 감정의 결과, 결핵은 예민한 영혼의 병. 질병이 환자의 성격이나 태도 탓으로 돌려질 때 환자는 이중으로 고통받는다. 아픈 것도 고통이고, 아픈 것이 내 탓이라는 것도 고통이다.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는 손택이 말한 바로 그것이다. 당신의 고통은 당신의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메시지.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스트레스가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입증됐다. 그러나 그 말을 의사가 다른 해법 없이 건넬 때, 그것은 의학적 조언이 아니라 책임 회피가 된다.
3-1. 진단받지 못한 고통의 무게
자궁내막증 평균 진단 기간이 7년에서 10년이라는 것은, 그 기간 동안 여성들이 "별 문제 없다"는 말을 들으며 고통을 혼자 감당했다는 뜻이다. 나의 생리통이 극심했던 20대 초반에 그 의사가 다른 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진단이 없으면 고통도 없는 것인가. 아니다. 고통은 언제나 실재했다. 다만 의료가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결론
그 초로의 남성 의사는 아마 악의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배운 의학이, 그가 살아온 세계가 여성의 고통을 그렇게 보도록 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악의 없는 시선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폭력.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 병원에 갔다. 그리고 계속 비슷한 말을 들었다. 별다른 문제가 없으니 스트레스를 피하세요. 이제는 그 말에 분노하는 대신 질문을 바꿨다. 의료가 설명하지 못하는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다. 고통은 언제나 실재했다. 다만 의료가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21살의 나는 그 진료실에서 두 가지 고통을 동시에 겪었다. 아랫배를 쥐어짜는 통증과, 그 통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때 그 의사가 다른 말을 했더라면. 하지만 그 의사 한 명을 탓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문제는 그를 그렇게 만든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는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