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 축사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관하여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은 단순한 성공 수사를 넘어, 인간 실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그의 메시지가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거두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사상과 놀라울 정도로 맞닿아 있다는 점이 참으로 흥미롭다.
본 글에서는 잡스의 철학과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연결하여, 우리가 어떻게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지 논해 보겠다.

1.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스스로를 규정하는 힘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핵심 명제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다. 사물은 만들어지기 전 용도(본질)가 결정되어 있지만, 인간은 아무런 이유 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며, 태어난 이후에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나의 '실제 존재(실존)'가 우선하며 본질은 그 다음이라는 얘기다. 솔직히 인간이 자기 자신의 본질을 찾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스티브 잡스 연설의 첫 단락인 "Connecting the dots(점들을 연결하는 것)"에서 우리는 실천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리드 대학을 자퇴하고 우연히 세리프 같은 아름다운 서체에 매료되어 서체 수업을 들을 때, 그것이 미래에 어떤 '본질적' 가치를 가질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직관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삶에 실제로 응용될 것이란 아무런 희망도 없는 채였다. 그러나 10년 후,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이 아름다운 글자체에 대한 공부는 놀라운 쓰임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인간이 미리 정해진 운명이나 본질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을 통해 자신의 실존을 스스로 정의해 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다.
2. 죽음이라는 거울: 극단적 상황에서의 자유
잡스는 연설의 마지막 단락에서 '죽음'을 언급힌다.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인생에서 큰 선택을 돕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말이다. 이는 사르트르가 강조한 '자유'와 '책임'의 개념과 연결된다.

사르트르에게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진 존재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기에 그에 따른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잡스는 죽음을 직면함으로써 타인의 기대, 자부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허위 의식(Bad Faith)'을 걷어내고 가장 본질적인 자아만을 남기라고 조언한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한계 상황 앞에서 인간은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정한 단독자로서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잡스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물었다고 한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할까?" 여러 날동안 답이 '아니오'로 이어질 때, 잡스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마치 영화처럼(타인의 비극을 영화에 비유하는 것이 양심에 약간 어긋나지만 사실 정말로 영화처럼)
잡스는 췌장암 진단을 받게 되고 정말로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가게 된다.
잡스는 연설에서 말한다.
죽음은 생명의 가장 훌륭한 창조일 수 있다. 그것은 생명의 교체를 만들어 내는 매개체이다. 죽음은 낡음을 청소하고 새로움을 위한 길을 열어준다. (중략)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과거의 통념에 맞춰 사느라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은 실존을 깨닫지 못한 인간들이 너무나 흔히 하는 잘못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이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3. 기투(Project): 미래를 향해 자신을 던지다
실존주의에서 인간은 현재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기투(Project)'하는 존재다. 잡스가 강조한 "Stay Hungry, Stay Foolish"는 바로 이 기투의 정신을 완벽하게 요약한다.
- Stay Hungry: 현재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결핍을 느끼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태도.
- Stay Foolish: 세상의 논리나 기성세대의 지혜(고정된 본질)에 갇히지 않고, 무모해 보일지라도 자신의 길을 가는 용기.
사르트르는 인간이 스스로를 설계하는 대로 존재하게 된다고 보았다. 잡스 역시 청중들에게 "타인의 소음이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잠재우게 하지 마라"고 당부한다. 이는 타인이 규정한 나의 모습(대타존재)으로 살지 말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새롭게 창조하는 '대자존재'로서 살아가라는 실존주의적 권고다.
4. 결론: 당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법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의 삶과 연설은 이 철학적 문장을 비즈니스와 혁신의 영역에서 증명해낸 드라마에 가깝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다. 잡스와 사르트르가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주체성'이다. 우리의 삶은 미리 쓰인 시나리오가 아니다. 매 순간의 선택이 모여 '나'라는 유일무이한 서사를 만든다.
잡스의 연설이 시대를 초월해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법이 아니라, 허무주의의 늪에서 벗어나 어떻게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며 '실존'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타인의 인생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라. 당신의 실존이 곧 당신의 본질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