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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윤리학

온라인 혐오는 왜 멈추지 않는가: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으로 본 혐오의 구조

by ethics-lab-1 2026. 3. 20.

2026년 3월 14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가 96세로 별세했다. '의사소통 합리성'과 '공론장 이론'으로 20세기 민주주의 철학의 토대를 쌓은 거인이었다.

 

사실 나는 이 부고 소식을 공식 언론 기사가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업로드된 글 덕분에 알게 되었다. 내가 어느 정도는 커뮤의 헤비 유저임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체로 온건한 성향의 커뮤이기 때문에 추모 댓글이 주를 이뤘지만 불쑥 불쑥 혐오 표현('뭐야, 이 듣보는?', '틀딱이었네' 등)이 끼어들고 있었다. 웃프다는 말마저도 하기 어려운 상황. 하버마스 별세를 알리는 글 위 아래로는 '요즘 엠생사는 XX 근황', '하꼬방송하다 퇴출당한 XX' 같은 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버마스가 평생 경고했던 그 장면이, 그의 부고를 전하는 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현실.

온라인 커뮤니티와 혐오의 메커니즘: 하버마스의 철학을 기반으로
출처 wikipedia

 

 

이 글은 그의 이론을 추도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온라인 혐오가 단순히 나쁜 말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구조적 파괴임을, 그리고 왜 플랫폼 자본주의 아래에서 혐오가 멈추지 않는지를 하버마스의 언어로 짚어보려 한다. 한국 인터넷 이용자의 42.7% 가 온라인 혐오 표현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는 한국언론진흥재단(2023) 조사는, 이것이 더 이상 개인 간 갈등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1. 하버마스가 꿈꾼 공론장: 이상적 대화의 조건

의사소통적 이성과 공론장

하버마스에게 민주주의란 투표 행위가 아니라 시민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하는 공론장(Public Sphere) 의 활성화에 있었다. 그는 인간이 언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의사소통적 이성(Communicative Reason) 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가 제시한 이상적 대화 상황(Ideal Speech Situation) 의 핵심은 세 가지다. 누구나 토론에 참여할 수 있을 것, 어떤 주장이든 제기할 수 있을 것, 그리고 오직 '더 나은 논증의 힘(The Force of the Better Argument)'만이 합의의 기준이 될 것. 그는 『의사소통 행위 이론(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에서 이렇게 밝힌다.

"담론에서 우리는 오직 더 나은 논증의 강제력에만 굴복한다. 권력이나 돈의 영향력은 배제되어야 한다." — 하버마스, 『의사소통 행위 이론』 1권

이 원칙에서 보면, 혐오 표현은 단순한 '나쁜 말'이 아니다. 의사소통 구조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다.


2. 혐오 표현은 어떻게 공론장을 파괴하는가

세 가지 파괴 경로

하버마스의 담론 윤리에서 혐오 표현이 허용될 수 없는 이유는 구조적이다.

첫째, 상호 인정의 부정이다. 합리적 담론은 참여자들이 서로를 평등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혐오 표현은 특정 집단의 존재 가치를 원천 부정함으로써 대화 상대의 자격 자체를 박탈한다. 상호 인정이 결여된 곳에서 합리적 토론은 불가능하다.

둘째, 공론장의 배제다. 혐오 표현은 소수자 집단을 위축시켜 공론장 참여를 가로막는다. 누군가의 발언이 타인의 입을 막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타인의 참여권을 찬탈하는 폭력이다.

셋째, 전략적 행위로의 타락이다. 하버마스는 진정한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의사소통 행위'와 타인을 조종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적 행위(Strategic Action)' 를 엄격히 구분했다. 혐오 표현은 합의가 아닌 굴복을 목표로 하는 극단적 전략적 행위다.


3. 왜 온라인에서 혐오가 멈추지 않는가: 생활세계의 식민화

두 영역의 충돌

하버마스의 이론에서 혐오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가장 날카롭게 설명하는 개념은 '생활세계의 식민화(Colonization of the Lifeworld)' 다. 그는 사회를 두 영역으로 구분했다. 가족·친구·이웃 간에 가치와 의미를 공유하는 의사소통의 영역인 생활세계(Lifeworld) 와, 돈과 권력이라는 매체로 움직이는 도구적 영역인 체계(System) 다.

문제는 체계의 논리인 '효율성'과 '이윤'이 생활세계의 '상호 이해'를 집어삼킬 때 발생한다.

플랫폼 자본주의와 혐오의 수익화

오늘날 온라인 플랫폼은 철저히 체계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다. 플랫폼 기업의 목표는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려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이를 위해 더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콘텐츠를 우선 노출한다.

이 구조 안에서 혐오 표현은 '고효율 상품' 이 된다. 혐오는 강력한 분노와 공포 반응을 유발하고, 이는 즉각적인 클릭과 공유로 이어지며, 플랫폼과 제작자에게 광고 수익이라는 실질적 자본을 가져다준다. 실제로 유튜브 알고리즘 연구(Ribeiro et al., 2020)에 따르면 자극적·극단적 콘텐츠는 일반 콘텐츠 대비 평균 3배 이상 의 체류 시간을 기록했다. 혐오는 자유로운 주체의 선택이기 이전에, 상업화된 구조가 만들어낸 기형적 부산물이다.


4. 법적 규제와 대항 담론: 두 가지 해법

규제의 정당성

하버마스는 『사실성과 타당성(Faktizität und Geltung)』에서 법이 시민들의 합리적 담론을 통해 정당성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혐오 표현 규제는 국가가 개인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공론장이라는 하드웨어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일부 표현을 규제해야 하는 구조다.

탈식민화의 과제

그러나 법적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버마스적 관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시민 사회 내부에서 혐오의 논리를 압도하는 '대항 담론(Counter-discourse)' 의 활성화다. 동시에 플랫폼 알고리즘이 수익성만이 아니라 담론의 건강성을 반영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체계의 논리에 제동을 거는 구조적 개입 없이 개인의 도덕성에만 기댄 해법은 한계가 있다.


결론: 하버마스가 남긴 숙제

부고를 접한 날 밤, 나는 그의 텍스트를 다시 펼쳤다. 그가 평생 주장한 것은 결국 하나였다. 인간은 대화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자본의 논리에 오염된 공론장 안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우리는 매일 목격하고 있다.

"혐오 표현도 자유인가?"라는 질문에 하버마스는 단호하게 답했을 것이다. 타인의 시민적 자격을 박탈하는 언어는 자유의 행사가 아니라 자유의 파괴라고. 그의 부고를 전한 페이지에 혐오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며,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의 무게를 다시 한번 느꼈다. 자본의 식민지가 된 공론장을 되찾는 것. 그것이 하버마스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시급한 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