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바루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하숙집 다락방에서 렌즈를 깎으며 생계를 유지하면서 철학 연구를 했다고 한다. 나는 이 '렌즈 깎는 노인' 같은 스피노자의 생애와 관련된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꼿꼿함이 학문적 자유에 대한 그의 긍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 공동체에서 파문 당한 후 생계를 위해 망원경이나 현미경 렌즈 깎는 일 말고는 구할 수가 없어서였다는 말도 있다. 비극적인 것은 렌즈를 깎을 때 발생하는 유리 가루를 오래 흡입하여 진폐증으로 44살이라는 (현대 기준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나말고도 이런 스피노자의 고결함, 고귀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렌즈 깎는 행위를 '명징한 진리의 빛을 탐닉하다'와 같이 포장해주는 글이 많은 걸 보면.

내가 스피노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논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물질적 풍요와 기술적 진보를 누리고 있다.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의 정보를 탐색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수천 명과 연결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대인은 과거보다 더 깊은 불안과 예속 상태에 놓여 있다. 타인의 시선에 스스로를 맞추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질주하며,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자극적인 정보에 감정을 지배당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현대인들에게 스피노자는 서늘하면서도 명쾌한 자유의 철학을 제시한다.
1. 자유라는 오해: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인가
대부분의 현대인은 '내 마음대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을 자유라고 믿는다. 오늘 점심 메뉴를 고르고, 사고 싶은 물건을 결제하는 행위에서 우리는 주체성을 느낀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를 '자유의 환상'이라고 일축한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행동 원인은 의식하지만, 그 행동을 결정짓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무지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특정 브랜드의 옷을 사고 싶어 하는 마음은 순수한 개인의 의지일까? 아니면 거대 자본의 마케팅, 주변의 시선, 소속감에 대한 결핍이 만들어낸 결과물일까?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볼 때, 외부 요인에 의해 유발된 욕망에 휘둘리는 상태는 자유가 아니라 '예속'이다. 진정한 자유는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욕망이 생겼는지를 이성적으로 통찰하는 데서 시작된다.
2. 코나투스: 존재의 힘을 긍정하라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코나투스(Conatus)'다. 이는 모든 사물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는 본성적인 힘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코나투스는 곧 삶의 의지이자 기쁨을 향한 동력이다. 현대인들이 흔히 겪는 무기력증이나 우울감은 이 코나투스가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억눌려 있음을 뜻한다.
스피노자는 우리의 감정을 '슬픔'과 '기쁨'으로 단순화하여 설명한다. 기쁨은 우리 존재의 역량이 증대될 때 느껴지는 감정이고, 슬픔은 그 역량이 감소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거나, 성취 지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소모되는 삶은 슬픔의 감정을 양산하며 코나투스를 약화시킨다.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권고한다. 외부의 칭찬이나 비난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무엇이 진정으로 나의 내면적 역량을 강화하는지 살피라고 말이다.
3. 필연성의 인식: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을 이해하기
스피노자는 흔히 '결정론자'로 불린다. 그는 우주의 모든 사건이 인과관계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보았다. 언뜻 보기에 이는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 자유란 '필연성을 인식하는 것' 그 자체다.
우리는 살면서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불운을 겪는다. 타고난 환경, 질병, 예기치 못한 사고 등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닥쳐온다. 이때 대다수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며 분노하고 좌절한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태도가 우리를 감정의 노예로 만든다고 보았다. 반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자연의 법칙 안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일임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감정의 동요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하는 '지적인 사랑(Amor Intellectualis)'이자 최고의 자유다.
4. 현대인을 위한 실천적 조언: 감정의 주인이 되는 법
그렇다면 스피노자의 철학을 현대의 복잡한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첫째, '수동적 감정'을 '능동적 감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질투, 분노, 공포와 같은 감정은 대개 외부 대상에 의해 수동적으로 유발된다. 누군가의 성공을 보고 질투가 난다면, 그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왜 질투가 나는지 그 인과관계를 철저히 분석해 보라. 감정의 원인을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순간, 그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하는 괴물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 된다.
둘째, 연대를 통한 역량의 확장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고립되어 있을 때보다 타인과 협력할 때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단, 이때의 연대는 서로의 코나투스를 증진시키는 방향이어야 한다. 서로를 구속하거나 착취하는 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고유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성적으로 합치되는 지점을 찾아 나갈 때 개인의 힘은 공동체의 힘으로 확장된다.
셋째, 현재에 집중하는 삶이다. 현대인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산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체계에서 과거와 미래는 실재하지 않는 상상에 가깝다. 오직 지금 이 순간, 나의 코나투스를 어떻게 발현시킬 것인지에 집중하는 것만이 실존적인 자유를 담보한다.
5. 결론: 예속의 굴레를 벗고 필연의 바다로
스피노자의 철학은 차갑고 엄격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긍정이 담겨 있다. 그는 우리가 신이나 사회적 규범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연의 일부로서 무한한 역량을 가진 존재임을 일깨워 준다.
진정한 자유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도 내가 왜 이렇게 느끼고 행동하는지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외부의 자극에 휘둘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잡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현대인에게 건네는 조언은 명확하다. "노예처럼 살지 마라. 이해하고, 인식하며, 그리하여 당신의 존재를 기쁨으로 채워라."
우리가 이 필연적인 세계의 질서를 긍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 숫자나 타인의 평가라는 좁은 창살을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으로서 숨 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400년 전의 철학자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강력한 해방의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