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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자기 결정권, 드라마 '은중과 상연'과 스위스 원정 안락사 시도 사건

최근 인천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사건에 관한 기사가 눈길을 끈다. 한 60대 남성이 '조력 자살'을 위해 스위스로 출국하려다 가족의 신고와 경찰의 설득 끝에 발길을 돌렸다는 이야기다. 남성의 나이가 요즘으로 치면 젊은 편이기도 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막으려는 가족들의 눈물 겨운 노력이 떠오른면서 눈시울이 붉어질 뻔 했다. 하지만 이 소식은 다시 한 번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하게 한다. 

 

흥미롭게도 이 현실의 비극은 몇 달 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 속 인물인 상연이 겪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죽음을 향한 선택, 그리고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친구 은중의 시선은 우리 사회가 조력 존엄사를 바라보는 양가적인 감정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다. 

 

1. 현실의 비극: 왜 그는 스위스로 향하려 했나?

인천공항 사건의 주인공 A씨는 폐섬유증 환자였다. 폐가 점점 굳어지며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이 질환은 환자에게 형언할 수 없는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고립감을 안겨준다. 그가 선택한 목적지인 스위스는 세계에서 드물게 외국인에게도 '의사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을 허용하는 국가다. 

 

A씨에게 스위스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고통의 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폐섬유증은 폐 조직이 딱딱해지며 호흡이 어려워지는 질병이다. 한번 섬유화된 폐는 되돌리기 어려우며 일단 진단을 받으면 3년 내지 5년 안에 목숨을 잃는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진단을 받은 A씨의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치료를 통해 호전된다는 일말의 작은 희망도 없이 점점 숨쉬기 어려워지는 신체를 붙잡고 남은 날들을 이어나가야 한다니. 이것이 진정 품위 있는 생의 마지막인가. 이런 회의가 들지 않았을까.

 

다행이라 해야할지? 

그의 스위스행은 가족의 신고와 경찰의 설득으로 실패했다. 

 

2. 드라마 '은중과 상연' : 죽음을 준비하는 친구들의 기록

절교한 지 10년 만에 나타나 자신의 스위스행에 동행해달라고 말하는 상연을 바라보며 은중은 아연실색한다. 은중은 갈등 끝에 스위스로 함께 가 상연의 마지막을 옆에서 지켜본다. 현재 언론 발표 등을 종합하면 드라마 속 상연처럼 스위스에서 '조력 사망(조력 존엄사)'으로 생을 마친 한국인은 모두 10여 명으로 추정된다. 

죽음의 자기 결정권, 드라마 '은중과 상연'과 스위스 원정 안락사 시도 사건
드라마 '은중과 상연' 사진 넷플릭스

 

* 조력 존엄사란

여기서 '안락사'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조력 자살, 조력 사망, 조력 존엄사(Assisted Suicide)'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를 정리하고 넘어가자.

 

  • 안락사(Euthanasia): 의료진이 환자에게 직접 약물을 투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
  • 조력 존엄사(Assisted Suicide): 의료진이 처방한 약물을 환자가 스스로 주입하여 생을 마감하는 방식.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 같은 단체가 이 방식을 지원하며, 전 세계적으로 '원정 존엄사'의 목적지가 되곤 한다.

 

* 한국의 법적 현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

  • 연명의료결정법: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 과정의 환자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생명 연장 장치'를 중단하는 것만 허용함.
  • 조력 존엄사법 논의: 최근 '조력 존엄사' 도입에 대한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생명 경시 풍조나 오남용 우려, 사회적 안전망 부족 등의 이유로 여전히 찬반 논란이 팽팽함.

내가 만약 은중이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엄연히 금지되어있는 조력 자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것만으로 처벌이라도 받지는 않을지 다분히 현실적인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상연이와의 우정과 그들 인생의 서사가 그 모든 걱정을 뛰어넘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자살방조죄라는 게 있으니까.

 

하지만 기사 등에 의하면 조력 사망에 단순 동행한 것만으로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라고 한다. 동행인이 기소되어 처벌받은 사례도 현재까지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처벌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한다. 곽준호 변호사(법부법인 청)는 "조력사망 의사가 이미 확고한 상황에서 단순히 옆을 지킨 것만으로는 처벌이 어렵다"면서도 "자살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거나 북돋우는 등 자살 의사가 확고해지도록 도와주거나 항공권 등 비용을 지원할 경우 자살방조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3. 조력 존엄사법 입법에 대한 논란

-  찬성 측 논거: "품위 있는 죽음은 인간의 마지막 권리"

찬성 측은 죽음의 과정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야 하며, 국가가 고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함.

  • 자기결정권의 존중: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에는 자신의 생명을 어떻게 마무리지을지 결정할 권리도 포함된다는 논리.
  • 고통의 완화와 존엄성 유지: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오히려 고문과 같다. "돌봄의 연장선"으로서 평화로운 마무리를 돕는 것이 진정한 인도주의라는 입장.
  • 사회적 비용과 가족의 고통 경감: 간병 파산, 간병 살인 등 장기 투병으로 인한 가족 공동체의 붕괴를 막고, 환자 본인도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 원정 안락사의 대안: 해외(스위스 등)로 떠나는 '원정 조력 사망'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제도화를 통해 투명하고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반대 측 논거: "사회적 타살로 변질될 위험성"

반대 측은 생명 경시 풍조 확산과 사회안전망 부재로 인한 부작용을 가장 우려함.

  • '현대판 고려장' 우려: 노인 빈곤율이 높고 복지가 미흡한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환자가 가족의 부담을 덜기 위해 죽음을 '강요'받거나 '선택당할' 위험이 큼.
  • 남용 및 오용 가능성: 조력 사망의 기준이 모호해지면 초기에는 말기 환자로 한정했다가, 점차 정신질환이나 장애인 등으로 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는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 이론을 제기함.
  •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 우선: 조력 사망을 입법하기 전에 환자가 고통 없이 여생을 보낼 수 있는 호스피스 시설을 확충하고, 사회복지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
  • 생명 경시 풍조 및 의료진의 윤리: "살리는 자"인 의사가 죽음을 돕는 행위는 의료 윤리에 어긋나며, 생명의 가치를 훼손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4. 정리

 

현실 세계에서 경찰은 유서가 발견되자마자 A씨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귀가시켰다. 이는 국가의 '국민 생명 보호 의무'에 근거한 정당한 조치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생명은 절대적인가?' 어떤 고통 속에서도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국가와 가족의 선의인가? A씨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앓고 있는 육체적 고통은 여전할 것이다. 

 

현재 캐나다, 벨기에,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에서는 조력 존엄사를 넘어 안락사까지 허용하는 추세이다. 반면 한국은 성급한 도입은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은중이 상연의 결정을 존중하기까지 겪는 갈등처럼, 한국도 사회적 합의를 위한 진통이 필요하다. 단순히 법으로 금지하거나 허용하는 차원을 넘어, '고통받는 개인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과 돌봄의 질적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너무나 꺼린다. 말그대로 터부시가 심하다. 이제는 '존엄한 마무리'에 대해 양지로 끌어올려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호스피스 완화 의료의 확충, 독거노인 및 난치병 환자에 대한 정서적 지원, 그리고 조력 존엄사에 대한 심도있는 법적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

선택하여 태어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생명의 무게를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삶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내 죽음이 존엄했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