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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선의지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윤리와 사상 18번 문항 관련

ethics-lab-1 2026. 3. 8. 22:24

<제시문>

이성은 실천적 능력으로서, 즉 의지에 영향을 주어야 할 능력으로서 우리에게 부여되어 있다. 따라서 이성의 진정한 사명은, 다른 의도에 이바지하는 수단으로서 선한 의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선한 의지를 낳는 것이어야 한다.

문제의 주인공인 근대 서양 사상가가 “임마누엘 칸트”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내기 위해서는 칸트의 인간관과 선의지에 대한 정확한 개념 이해가 필요하다.

 

칸트의 선의지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윤리와 사상 18번 문항 관련

◆ 칸트의 인간 이해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칸트의 인간 통찰이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지점이다. 인간은 우주의 한 점에 지나지 않은 지구에서 생겨나서 아주 잠시 동안 생명을 부여 받았다가 다시 지구로 돌아가야만 하며 또한 그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다지 중요성이라고는 없는 ‘동물적 피조물’일 뿐인 것이다.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칸트는 인간을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로 파악하지 않고 자연 법칙과 자유 법칙, 이 두 세계에 걸쳐 있는 독특한 존재로 본다.

 

1. 두 세계의 시민: 감각계와 지성계

칸트는 인간을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한다.

  • 감각계(Phenomenal World)의 존재: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자연법칙(인과율)의 지배를 받는다. 배고픔, 갈증, 고통을 피하려는 욕구 등 '자연적 경향성'에 이끌리는 본능적 존재인 것이다. 이 세계는 경험의 세계라고로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칸트가 ‘이성’을 강조했다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감각적, 경험적 세계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② 의지만 있다면 자연 본성 자체는 욕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X)’는 선지는 당연히 틀릴 수 밖에 없는 선지인 것이다.
  • 지성계(Noumenal World)의 존재: 인간은 이성을 통해 스스로 도덕 법칙을 세우고 그에 따를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이다. 물리적 강제나 본능을 이겨내고 "해야만 한다"는 당위(Duty)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나와야 한다. 감각적, 경험적 세계의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배고프지만, 배고픔을 참고 도둑질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 죽이고 싶을 정도로 누군가가 밉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 존재. (물론 자연적 경향성에 굴복하는 인간들도 많다. 차고 넘친다. 칸트는 그들을 경멸했으려나) 따라서 ‘① 경험적 원리에 의존하지 않는 순수한 의지는 인간에게 불가능하다(X)’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 순수한 의지가 불가능하다고 해버리면, 인간은 지성계의 시민이 될 수 없으며 그 어떠한 도덕적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된다.(동물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듯이) 칸트는 인간이 경험적 원리(경향성)의 유혹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이성의 원리에 따라 행위할 수 있는 존재라고 확신했다. 더 나아가 칸트에게 도덕적 행위란 바로 ‘경험적 원리에 의존하지 않는 순수한 의지’를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 그 자체를 의미한다.

2. 이성적 존재로서의 자율성

칸트가 정의하는 인간의 위대함은 '자율(Autonomy)'에 있다. 동물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타율적 존재'라면,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자기 자신에게 입법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자신의 욕망(경향성)을 스스로 통제하고, 이성이 제시하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에 따라 행동할 때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동물을 넘어선 '인간다운' 존재가 된다. 이성은 특정한 개인의 성격이나 재능, 선한 의지의 유무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추고 있는 보편적 능력이며 이 능력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도덕 법칙)를 인식할 수 있다. 나중에 공부하게 될 칸트의 제1정언명령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권고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라는 내용이 이 ‘이성의 보편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③ 이성은 선한 의지를 가진 개인에게만 고유할 뿐 보편적일 수 없다(X)’는 내용도 틀린 것이 된다.

 

◆ 칸트의 선의지

④ 인간의 자유롭고 이성적인 의지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자체적 선이다.(O)

칸트 철학에 있어서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이성적이라면 그 의지는 필연적으로 ‘선의지’일 것이다. 선의지는 무조건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 자체로서 제한 없이 선한 유일한 것이다. 애링턴의 서양윤리학사에는 이렇게까지 표현되어 있다. ‘선의지는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여전히 선하며 그것을 경멸스러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어떤 경우나 상황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선의지에 따라서 행위한다 할지라도 그 행위의 결과가 행위자에게 손해를 입히고 고통을 주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선하다고 인정된 의지 자체와 관련해서는 어떤 결점도 찾아낼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의지가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데 효과적이 아닐 수도 있으며 따라서 거의 아무 것도, 아니면 전혀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선의지는 오직 그 자체만으로도 보석처럼 빛을 내며 자기 자신 안에 완전한 가치를 품고 있는 것이다.” 선의지에 대한 이러한 칭찬과 더불어 당연히 제기되는 질문은 그렇다면 무엇이 의지를 선하게 만드는가라는 것이다.’

위 인용된 애링턴의 마지막 문장은 마치 ⑤번 선지 ‘인간의 무제한적으로 선한 의지는 어떤 법칙에 의해서도 제약될 수 없다(X)’를 겨냥한 듯하다. 무엇이 의지를 선하게 만드는가. 그것은 바로 도덕법칙이다. 따라서 어떤 법칙에 의해서도 제약될 수 없다는 선지는 당연하게도 틀렸다. 그래도 애매하다면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자.

 

정리

칸트에게 의지란 단순히 “하고 싶다”는 충동이 아니다. 그는 의지를 “이성적 욕구”라고 정의한다. 동물이 본능(감각적 충동)에 의해 움직인다면, 인간은 이성을 통해 원리나 법칙에 따라 행위를 결정한다. 따라서 인간에게 “이성적인 의지”가 있다는 말은, 행위의 근거를 자신의 기분이나 이익이 아니라 ‘이성이 제시하는 법칙’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칸트가 말하는 자유는 “내 마음대로 하는 방종”이 아니다. ‘자율’은 스스로 입법한 도덕 법칙에 자기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이다. 즉, “자유로운 의지”란 감각적 경향성(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도덕 법칙만을 따르기로 결정하는 의지인 것이다.

인간이 이성적이라면 도덕법칙을 인식할 것이고,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롭다면 본능을 이기고 그 법칙을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이성적으로 인식한 법칙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행하려는 마음가짐, 이것이 바로 선의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