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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윤리학

유튜브 알고리즘과 철학적 결정론: 나의 클릭은 정말 '자유의지'인가?

by ethics-lab-1 2026. 3. 24.

나는 얼마 전 대표적 숏폼 앱을 하나 삭제했다. 처음에는 '잠깐 보면서 시간 보내지, 뭐.', '요즘 뭐가 유행하는지 좀 볼까?'라는, 나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2시간? 2시간이 뭔가. 숏폼을 보며 3시간이 훌쩍 넘어간 것을 발견했을 때는 솔직히 조금 당혹스러웠고 정신도 신체도 피로했다.

그럼에도 곧바로 앱을 끄지 못한 건, 내가 좋아하는 주제들을 내가 '선별'해서 보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었다. 숏폼을 넘기다 넘기다, 알아듣지도 못할 어떤 외국어로 말하는 여성이 이상한 옷을 입고 이상한 춤을 추는 영상이 떴을 때, '아, 내 알고리즘이 썩어버렸구나' 직감했다.

'내가 보고 싶어서 보고 있다'는 느낌. 정말일까?

 

구글의 전 회장 에릭 슈미트는 2010년 테크노미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다음에 어디로 갈지, 당신보다 더 잘 안다." 이 발언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글을 읽어야 할 이유다. 스마트폰 피드 안에서 매일 수십 번의 '선택'을 내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그 선택이 진짜 자유의지인지를 철학의 언어로 따져보려 한다.


1. 라플라스의 악마가 부활했다: 알고리즘 결정론

19세기의 예언

19세기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이렇게 상상했다. 우주의 모든 입자의 위치와 에너지를 아는 존재가 있다면, 과거와 미래의 모든 사건을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다고. 이것이 '라플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다.

"충분히 광대한 지성이 자연을 움직이는 모든 힘과 모든 존재의 위치를 한순간에 파악할 수 있다면, 그 지성에게 불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확률에 관한 철학적 시론』(1814)

현대판 악마: 추천 알고리즘

오늘날 숏폼·유튜브 알고리즘은 이 악마의 디지털 버전이다. 유튜브는 하루 10억 시간 이상의 영상 시청 데이터를 처리하며, 사용자가 영상을 멈춘 지점, 다시 보기 한 구간, 특정 화면에서 머문 초 단위의 시간까지 모두 데이터화한다. 철학적 결정론의 관점에서 보면 사용자의 클릭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이전의 시청 기록이라는 '원인'에 의해 필연적으로 도출된 '결과'다. 미래의 클릭은 이미 과거의 데이터 안에 결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2. 스피노자의 돌: 우리는 원인을 모를 뿐이다

날아가는 돌멩이의 착각

네덜란드 철학자 바루흐 스피노자는 『에티카(Ethica)』에서 흥미로운 비유를 들었다.

"날아가는 돌멩이에게 의식이 있다면, 자신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날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3부 편지 58

사실 돌멩이는 누군가 던진 힘이라는 외적 원인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날고 있다고 착각한다. 내가 숏폼 앱 안에서 '선별'하고 있다고 믿었던 그 감각이 정확히 이것이었다. 알고리즘이 던진 것인데, 내가 날고 있다고 착각한 것.

선택의 착각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자유란 단지 '원인을 모르는 상태'일 뿐이다. 알고리즘의 복잡한 작동 원리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누리는 제한된 선택을 자유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플랫폼이 보여주는 매력적인 선택지 중 하나를 골랐을 때, 우리는 그것을 나의 능동적 의지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선택지 자체가 이미 알고리즘에 의해 필터링된 결과물이다.


3. 필터 버블: 닫힌 세계에서의 자유

유튜브 알고리즘과 결정론: 나의 클릭은 정말 '자유의지'인가?
출처 pexels

알고리즘이 만드는 감옥

단순히 영상을 보는 문제를 넘어, 알고리즘은 인간의 인지 체계 자체를 고착화시킨다. 정보사회학자 엘리 패리저(Eli Pariser)가 2011년 명명한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이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정보만 반복 제공함으로써 사용자를 자신의 신념이라는 좁은 감옥에 가둔다. 논쟁적 주제나 불편한 진실은 '체류 시간 극대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걸러진다.

확증 편향의 강화

이 과정에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심화된다. 자신의 기존 신념과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반대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 패턴이다.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유튜브 알고리즘은 정치적 콘텐츠 소비에서 이용자를 점진적으로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내가 본 이상한 춤 영상은 단순한 알고리즘 오작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관심사의 경계가 조용히 확장되어 온 결과였다. 내 머릿 속... 도대체 뭐가 들어있었던 걸까.


4. 결정론에 저항하는 법: 디지털 사유의 회복

인식의 확장

그렇다면 인간은 알고리즘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가. 스피노자적 관점에서 저항의 길은 '원인을 아는 것'에 있다. 알고리즘이 나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인식하는 순간, 돌멩이는 비로소 자신이 던져진 존재임을 깨닫는다.

예측 경로를 이탈하라

개인 차원의 실천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검색 기록을 정기적으로 삭제하고, 평소 관심 없던 분야의 콘텐츠를 의식적으로 찾아보는 것은 알고리즘의 예측 경로를 이탈하는 적극적 저항이다. "내가 왜 이 영상을 보게 되었는가?"를 스스로 묻는 메타인지적 태도가 핵심이다. 유튜브를 켤 때마다 첫 화면의 추천 영상을 클릭하지 않고 검색창부터 여는 것. 작은 거부권이지만, 알고리즘의 선제적 예측을 한 박자 늦추는 효과가 있다.


결론: 인간다움은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앱을 삭제하고 나서 처음 며칠은 이상하게 허전했다. 손이 자꾸 그 앱이 있던 자리를 향했다. 그게 더 무서웠다. 내가 그 앱을 원한 게 아니라, 알고리즘이 만들어놓은 습관 회로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는 걸 그때 실감했다.

 

라플라스의 악마는 완벽한 정보를 가졌지만, 현실의 알고리즘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어제까지 숏폼만 보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철학책을 집어 드는 순간을 예측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위대함은 통계적 확률을 깨트리는 예외성과 돌발성에 있다. 알고리즘이 '썩었다'고 느끼는 그 직감 자체가, 사실은 우리가 아직 기계에 완전히 포획되지 않았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오늘 당신이 누른 클릭이 어제와 똑같은 궤적을 그리지 않기를 바란다. 알고리즘이 건네는 달콤한 추천을 때로는 거절할 줄 아는 용기. 그 작은 거부권이야말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인간다운 자유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