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을 할 때, 자료 조사를 하라고 학생들에게 태블릿을 쥐어줄 때가 있다. 그러면 이제 학생들은 묻는다. "챗지피티 써도 되나요?"
생성형 AI가 내놓은 문장을 그대로 쓰는 학생들의 글은 금방 티가 난다. 대충만 봐도 가려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학생이 그것을 조금 고쳐 더 나은 문장으로 만들어 제출한다면? 그 글의 저자는 누구인가. 학생인가, AI인가, 아니면 AI를 학습시킨 수백만 명의 원저자들인가.
이 질문에 가장 정확하게 답한 사람은 철학자도 법학자도 아니었다. 1939년에 단편소설을 쓴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였다. 그의 소설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는 AI 저작권 논쟁이 시작되기 80년 전에 이미 그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AI 창작물을 매일 소비하거나 생산하는 사람, 그리고 이 기술이 자신의 창작과 직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한 사람을 위해 이 논쟁의 철학적·법적 구조를 함께 들여다보려 한다.
1. 보르헤스의 예언: 똑같은 문장, 다른 저자

피에르 메나르의 불가능한 프로젝트
보르헤스의 소설 속 주인공 피에르 메나르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다시 쓰기로 결심한다. 단순한 필사가 아니다. 세르반테스가 17세기 스페인에서 썼던 것과 단어 하나, 쉼표 하나 다르지 않은 문장을 20세기 프랑스인의 정신으로 독자적으로 창작하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두 텍스트는 글자 그대로 동일하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화자는 메나르의 버전이 세르반테스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다"고 주장한다.
"세르반테스의 텍스트와 메나르의 텍스트는 언어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두 번째 것이 거의 무한히 더 풍부하다." — 보르헤스,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1939)
동일한 문장이지만 저자가 다르면 의미가 달라진다. 보르헤스가 80년 전에 던진 이 역설이 오늘날 AI 저작권 논쟁의 정확한 핵심이다.
AI와 메나르의 구조적 닮음
생성형 AI는 인터넷에 축적된 인류의 글쓰기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하고 새로운 문장을 생성한다. GPT-4는 약 1조 개 이상의 토큰 데이터를 학습했으며, 수천억 개의 파라미터를 통해 다음 단어를 통계적 확률로 예측한다. 피에르 메나르가 세르반테스의 텍스트를 내면화해 재창조했듯, AI는 인류의 텍스트를 내면화해 새 문장을 생성한다. 문제는 그 결과물의 저자성(Authorship) 이 누구에게 귀속되느냐다.
2. 법정으로 간 보르헤스: NYT vs 오픈AI
소송의 핵심 쟁점
2023년 12월 뉴욕타임스(NYT)가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제기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소송은 보르헤스의 역설을 현실 법정으로 끌어들였다. 쟁점은 두 가지다. 오픈AI가 NYT 기사 수백만 건을 무단으로 학습 데이터로 활용했다는 것, 그리고 ChatGPT가 NYT 기사를 수백 단어 단위로 거의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것. NYT는 후자의 실제 사례를 소장에 증거로 첨부했다.
오픈AI의 반론은 메나르적이다. AI의 학습은 인간이 책을 읽고 영향을 받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으며, 이는 저작권법상 '공정 이용(Fair Use)' 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수천 권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아 새 소설을 쓸 때 원저자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듯이.
공정 이용의 네 가지 기준
미국 저작권법 107조는 공정 이용 판단 기준으로 사용 목적의 상업성, 저작물의 성격, 사용된 분량, 원저작물의 시장 가치 영향 네 가지를 제시한다. 법원은 현재 이 기준으로 AI 학습 행위를 어떻게 평가할지 검토 중이다. 한국의 경우 저작권법 제35조의5에 유사 조항이 있지만, AI 학습에 특화된 해석은 아직 없다.
3. 철학이 묻는다: 저자성의 조건은 무엇인가
로크의 노동 이론과 AI
존 로크(John Locke)는 재산권의 기원을 노동에서 찾았다. 자신의 노동을 자연에 혼합했을 때 그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이 생긴다는 논리다. 이 기준을 AI에 적용하면 질문이 세 갈래로 쪼개진다. AI를 설계한 개발자인가, 프롬프트를 입력한 사용자인가, 아니면 학습 데이터를 제공한 원저자들인가.
맥락이 의미를 만든다
보르헤스의 핵심 통찰은 여기서 빛난다. 동일한 문장도 누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썼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AI가 생성한 문장과 원본 데이터 사이의 코사인 유사도(두 텍스트가 의미 공간에서 얼마나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지 측정하는 수치)가 충분히 낮다면, 즉 수학적으로 새로운 맥락이 형성됐다면 그것은 독립적 창작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창작의 본질이 "누가 재료를 제공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졌는가" 로 옮겨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4. 현재 법적 지형과 미결 과제
미국 저작권청은 2023년 AI 생성물은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없으면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고 공식화했다. 유럽연합 AI법(EU AI Act)은 2024년 발효되어 AI 학습 데이터 투명성 공개를 의무화했다. 한국은 2024년 저작권위원회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했지만 AI 생성물의 권리 귀속 문제는 여전히 미결이다.
결국 이 논쟁이 해결하지 못한 핵심 질문은 세 가지다. 학습 데이터 사용에 대한 원저자의 동의와 보상 기준, AI 생성물의 저작권 귀속 주체, 그리고 AI와 인간의 공동 창작물을 어떻게 법적으로 정의할 것인가.
결론: 메나르의 질문에 우리가 답해야 한다
결국 나는 수업 방침을 바꿨다. AI를 쓰되, 어느 문장이 AI의 것이고 어느 문장이 자신의 것인지 표시하라고. 처음엔 학생들이 어색해했다. 그런데 그 경계를 의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학생들이 AI 문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단순히 더 낫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자기 목소리로 만들려고 고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비로소 저자가 됐다.
보르헤스식으로 말하자면, 동일한 문장이라도 내 맥락이 없으면 내 글이 아니다. AI가 생성한 문장에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혼합하는 순간, 저자성은 이동한다. 그것이 어쩌면 이 논쟁이 법정 밖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실용적인 답일지 모른다.
피에르 메나르의 프로젝트는 불가능했지만, AI의 프로젝트는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다. 수백만 명의 원저자를 학습한 AI가 생성한 문장은 메나르보다 훨씬 복잡한 저자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법원의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우리가 먼저 합의해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가치다. 창작이란 무엇인가, 저자성이란 무엇인가. 보르헤스는 1939년에 이 질문을 던졌다. 2026년의 우리는, 교실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아직 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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