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윤리학41 감정은 우리에게 일어나는가, 우리가 일으키는가: 영화 '어바웃 타임'과 스토아 철학의 답 인생 영화가 뭐예요? 라고 물으면 가끔 레이첼 맥아담스가 끝내주게 아름답게 나오는 영화 '어바웃 타임'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의 반응은 긍정적일 때도 있지만 최근엔 부정적인 반응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아, 어바웃 타임, 라라랜드 빼고 말하라고 할 걸 그랬어' 같은. 그만큼 사람들 입에 너무 많이 오르내려서 그런지 지겹다는 반응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꿋꿋이 인생 영화로 어바웃타임을 꼽는 사람들을 꽤 좋아(?)한다. 왜냐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단순히 비오는 결혼식 장면이 예뻐서,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가 부러워서가 아니지 않을까 해서다. 영화가 건네고자 하는 행복한 삶의 비밀 공식을 어렴풋이라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다.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 2026. 3. 24. 유튜브 알고리즘과 철학적 결정론: 나의 클릭은 정말 '자유의지'인가? 나는 얼마 전 대표적 숏폼 앱을 하나 삭제했다. 처음에는 '잠깐 보면서 시간 보내지, 뭐.', '요즘 뭐가 유행하는지 좀 볼까?'라는, 나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2시간? 2시간이 뭔가. 숏폼을 보며 3시간이 훌쩍 넘어간 것을 발견했을 때는 솔직히 조금 당혹스러웠고 정신도 신체도 피로했다.그럼에도 곧바로 앱을 끄지 못한 건, 내가 좋아하는 주제들을 내가 '선별'해서 보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었다. 숏폼을 넘기다 넘기다, 알아듣지도 못할 어떤 외국어로 말하는 여성이 이상한 옷을 입고 이상한 춤을 추는 영상이 떴을 때, '아, 내 알고리즘이 썩어버렸구나' 직감했다.'내가 보고 싶어서 보고 있다'는 느낌. 정말일까? 구글의 전 회장 에릭 슈미트는 2010년 테크노미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2026. 3. 24.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과 마르크스의 노동 소외론 왜 현대인은 일터에서 의미를 찾지 못할까?2022년 미국의 한 엔지니어가 자신의 틱톡 계정에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는 용어를 쓴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이 현상이 알려지게 됐다. 실제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정해진 시간 동안 부여된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며 심리적으로는 일과 자신을 분리하는 현상을 말한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열정 부족’이나 ‘무책임’으로 비칠지 모르나, 청년층의 인식은 당연히 나쁘지 않다. 오히려 긍정적인 편이다. 단순히 MZ세대의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치부하기에는 이 현상이 가진 뿌리가 깊다. 약 180년 전,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 노동자가 겪게 될 필연적인 비극을 예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소외(Alienation)’.. 2026. 3. 23.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가 던지는 경고: 요나스의 책임 윤리 플라스틱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제 코끼리를 죽이지 않아도 당구를 즐길 수 있다"고. 19세기 중반까지 당구공은 코끼리 상아로 만들어졌고, 플라스틱은 역설적으로 동물을 보호하는 '착한 발명'으로 칭송받았다. 그 선의의 발명품이 지금 우리 혈액 속에서 발견되고 있다. 어느 날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그림책 한 권이 이 아이러니를 가장 정직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김지형 작가의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 아이들을 위한 동화처럼 보이지만, 읽고 나서 한동안 마트에서 플라스틱 포장 식품을 집어 들 때마다 손이 멈칫했다. 이 글은 그 그림책이 촉발한 질문을 독일 철학자 한스 요나스(Hans Jonas)의 언어로 풀어가려는 시도다. 기후 위기와 미세 플라스틱 문제에 막연한 죄책감을 느끼지만 .. 2026. 3. 22. 과학 기술의 가치 중립성과 오펜하이머의 형벌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둘러싼 논쟁은 영화적 흥행을 넘어 현대 과학 철학의 가장 아픈 지점을 건드린다. "과학 기술은 가치 중립적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은 원자폭탄이라는 파괴적인 결과물 앞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오펜하이머의 유죄 여부를 가리는 과정은 단순히 한 과학자의 생애를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인류가 기술을 대하는 태도와 그 뒤에 숨은 윤리적 책임을 성찰하는 과정이다. 1. 가치 중립성이라는 방패: 사실과 가치의 분리과학 기술의 가치 중립성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오펜하이머를 '유죄'로 볼 근거가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의 핵심은 과학적 발견(Fact)과 그 결과물의 활용(Value)을 엄격히 구분하는 데 있다. 핵분열의 원리는 자연의 법칙이며, 이를 발견한 것은 인류 지.. 2026. 3. 21. MBTI의 T와 F, 그리고 고대 철학의 행복론: 스토아적 아파테이아와 에피쿠로스적 아타락시아 너 혹시 T야?T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겠냐만은... 이 질문은 알면서도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는 냉정한 사람, 혹은 대화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눈치를 줄 때 하는 말이다. 앞에 욕을 붙이기도 한다. 그만큼 답답하다는 소리. 인간의 성격을 분류하는 도구로 널리 알려진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에서 가장 빈번하게 논쟁의 중심이 되는 지표는 단연 'T(Thinking, 사고형)'와 'F(Feeling, 감정형)'다. 이 두 지표는 단순히 차가움과 따뜻함이라는 성격적 기질을 넘어,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고 의사를 결정하는 '철학적 기준'의 차이를 드러낸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현대적 심리 유형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양대 산맥인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가 추구했던.. 2026. 3. 21. 이전 1 2 3 4 5 6 7 다음